집단

나는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을 일광이라는 곳에서 보냈다.

(지금의 일광은 무개념개발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맑은 공기와 정제되지 않은 깨끗함이

넘쳐나는 마을이었다.)

 


그러다 가족사정때문에 5학년 초기에

지금 살고 있는 반송이라는 동네로 이사&전학을 하게 되었는데,

문득 전학을 왔던 첫날이 생각난다..

 

 

그당시 일광에 비하면 그래도 나름 도시라고 생각했던 나는,

새 마을, 새 학교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있었다.

 

 

이윽고 선생님이 소개를 해주시고,

나는 배정해주신 자리로 가서 앉았다.

 

전학 첫날이라 아직 새학교의 교과서를 구입하지 못한 나는

부득이하게 필기를 하기 위해 연습장과 필통을 꺼냈는데,

 

그때,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여학생들이

나를 보고 낄낄거리며 비웃는게 보이더라. 

 

왜 그렇게 기분나쁘게 웃는지 이유를 모른채

기분상해있다가.. 문득 사용하던 필통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다부서져가는 녹슬은 필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마 개들 눈에는 촌스러워보였던 모양이다.

 

'재 필통봐라~진짜 꼴사납네~'

라는 식으로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리며 비웃던 그 광경.

 

 

그 광경은 전학 첫날의 기대감과 설레임에 들뜬 나를

한번에 절망과 좌절감으로 바꾸어놓았다.

 

 

 

내가 일광으로 처음 전학왔을때

일광의 친구들은 내 그런 녹슬은 필통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날 친하게 대해주었었는데..

 

그곳의 친구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타인이 자신에게 무심코 행하는

아무 생각없는, 의미없는 텃세가

한사람에게는 큰 상처를 줄수 있다는 것을..

그것을 아이들은 몰랐던 모양이다.

 

 

어렸을때의 기억만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려 하는거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집단이나 어느 특정한 장소에 귀속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 집단만의 윤리나 사상(이라고 말하는건 좀 광범위하지만)

들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그 귀속되어진 윤리나 사상들이 서로를 안으로 가둬놓게 만들고,

타 집단이나 자신들과는 다른 어떤 것들을 배척하게 만든다.

 

참 안타깝다.

 

사실 어떤 집단이든 그런 성향들을 갖고 있고,

어쩔수 없다고 낙관하고 바라보고 있지만,

 

그래도 참 안타깝다.

 

 

자신들의 집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타인 혹은 집단은

그들의 기준이 무엇인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지 알수 없다.

 

 

그런데도 그 집단의 사람들은

집단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단지 다른곳에서 왔고,

자기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저 배척하려고만 한다.

자신들만의 잣대로 그 타인을 판단하려 한다.

그 타인에게 자신들과 똑같은 삶을 무의식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물론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말이다.

자신들이 닫혀있는지도 평생 모른채.

 

 

이미 갖혀져버린 짱구를 열라고는 차마 말을 못하겠고..

최소한 그 집단에 적응하는 방법이라도 가르쳐주면 좋을텐데,

 

 

이 사회는 그게 잘 안되나보다.

 

 

그 집단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알수도 없는 타인들은

그저 한마리 먹잇감처럼 그곳에 던져져서 사냥당한다.

 

 

그러다 사냥당한 그 타인은 결국 그 집단과 같은

사상과 윤리를 갖게 되고, 그 집단안의 사람이 되어

타 집단을 배척하고, 집단에 귀속되어진채 살아간다.

 

 

그 집단의 귀속인들과 똑같은 과오를 범하게 되어버리는 거다.

 

 

물론 적응하고 탈피하던가, 발버둥치는 선택들은

개인에게 달렸지만,  

 

나는 암묵적으로 그렇게 구축되어져버린

사회의 시스템아닌 시스템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지금 나도 새 집단에 던져져서

그 집단의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 위기에 처해있다..





by 쥬리오 | 2008/07/14 15:08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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